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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수해민이 거주하는 콘테이너엔 아직도 한겨울 한파가...
  글쓴이 : 평사협     등록일 : 07-03-12 16:39     조회 : 2561    
요 며칠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였다. 연일 내린 비가 봄장마를 부르는가 하면 강한 바람은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던 고목나무 등걸을 꺾기도 했다. 며칠 전 내린 눈은 여전히 남아있고 주변의 풍경은 겨울과 다름없다.

거리에서도 봄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을 쳤고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려와야 할 골목은 빈 과자봉지만이 뒹굴었다. 작심하고 떠난 날의 하늘은 흐렸지만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지난 해 연말부터 진부에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의 문턱에 와서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조급증이 나 길을 나섰다.

수마가 할퀴고 간 59번 국도는 여전히 복구중

10일,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으로 가기 위해 59번 국도를 탔다. 강원도 정선에서 본 하늘은 흐렸지만 평상의 모습처럼 평온했다. 서울에서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하늘만으로는 도무지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랬던 하늘이 나전 삼거리를 지나자 비를 떨구기 시작했다. 나전 삼거리는 오대천과 조양강이 만나는 합수머리가 있는 곳이다. 또다른 아우라지 하나를 만날 수 있는 정선군 북평면 나전 삼거리는 강릉으로도 갈 수 있고 정선과 진부로도 갈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오대천은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상류다. 예전엔 우통수를 남한강의 발원지라고 했으나 얼마 전부터 발원지가 태백의 검룡소로 바뀌었다. 아무려나 오대천도 남한강을 형성하는 큰 물줄기임은 틀림없다.

나전 삼거리에서 진부에 이르는 길은 곳곳이 공사 중이다. 지난 해 여름 내린 폭우로 오대천은 성한 곳이 없었다. 임시복구를 해 놓았다지만 길은 여전히 누더기와 다름없었다. 지금 진행되는 공사는 임시복구 해놓았던 것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공사다.

장전계곡 입구를 지나면서부터는 빗줄기가 진눈깨비로 바뀌었다. 장전계곡을 경계로 평창과 정선이 갈라진다. 정선 땅엔 비가 내리고 평창 땅엔 눈이 내리는 기막힌 풍경이 진경처럼 펼쳐진다.

일방통행으로 진행되는 공사구간을 벗어나자 진눈깨비는 함박눈으로 변했다. 차량으로 돌진하는 함박눈은 거칠고도 당당했다. 갑작스런 눈으로 차량들의 속도가 뚝 떨어졌다. 막동계곡을 지나자 내린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내려보지만 우산을 쓰지 않고서는 잠시도 견디기 어려웠다.

지난 해 여름 큰 피해를 입었던 수항 마을도 여전히 공사중이다. 당시 길을 잃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고 그들을 구조한 건 헬기였다. 헤쳐나갈 길조차 사라진 59번 국도변 사람들은 망연자실했고 죽음의 문턱을 수시로 넘나들어야 했다.

진부에 도착하자 얼마나 많은 눈이 퍼붓는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내리는 눈에 바람까지 불어 진부거리는 인적조차 뜸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어 수재민들이 모여사는 컨테이너촌을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진부 시내를 두어 바퀴 돌은 후에야 관광안내소를 발견했다. 수재민촌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친절하게 안내한다. 그들이 일러준 길을 따라 들어가니 비로소 컨테이너촌이 나타난다.

수재민들이 모여있는 곳은 진부면의 체육공원이었다. 컨테이너촌 양쪽에 축구 골대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들이 머무는 곳은 얼마 전까지 축구장이었던 모양이다. 축구장 안에 성냥갑 같은 컨테이너가 서른 개 정도 놓여있고, 그것들은 나름의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날씨 만큼이나 냉랭한 주민들의 반응



▲ 수재민들이 모여사는 컨테이너촌. 인기척을 느낄 수 없다.  

ⓒ2007 강기희



▲ 컨테이너촌은 어린 아이들의 재잘거림조차 들리지 않는다.  

ⓒ2007 강기희

컨테이너는 외관상 보기 흉했던지 외벽을 덧붙이고 지붕까지 얹었다. 언뜻 보기엔 그럴 듯해 보였지만 컨테이너는 역시 컨테이너였다. 눈이 쌓인 컨테이너촌은 겨울의 한복판에 있는 듯 보였다.

컨테이너촌으로 들어가 보았다. 눈보라 심한 탓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다. 우산조차 바람을 견딜 수 없어 날개를 스스로 접을 수 밖에 없는 그런 날씨였다. 컨테이너 박스가 바람에 날려가지 않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컨테이너촌을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한참을 서성거려보지만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들은 강한 바람에도 열리지 않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라곤 가스통과 벽에 기대어 놓은 자전거가 유일했다.

컨테이너촌은 촬영이 끝난 영화세트처럼 고요했다. 귀를 귀울여보지만 어린아이 울음소리나 사람들의 헛기침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다. 몇 집의 문을 두드려 보지만 반응이 없다. 길을 잘못들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재민들이 사는 곳은 다른 곳이지 싶었다.

이상하다 싶어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칠순은 되어 보이는 노인이 '외출중'이라는 팻말이 붙은 집으로 들어갔다. 반가움에 노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노인은 다시 외출을 하려는지 우산을 펴들고 집을 나섰다.

"여기가 지난 여름 수해를 입은 분들이 사시는 곳이죠?"

낯선 방문객의 물음에 노인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퉁명스럽게 "그런데 왜요?"라고 대답했다. 노인의 본능적인 반응에 방문객은 움찔했다.

"아, 그분들이 사는 모습이 어떤가 취재하러 왔습니다. 어느 집에 가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방문객의 말에도 노인은 경계를 풀지 않았다. 노인은 더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저쪽 집으로 가보슈" 하고는 문을 걸더니 눈길을 나섰다. 노인은 방문객이란 작자들이 자신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눈치였다.

노인이 일러준 집이 '이집인지 저집인지' 하며 헤매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눈보라를 헤치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라 한걸음에 달려갔다. 어딜 가시냐고 물으니 마을회관에 간다고 한다. 마침 잘됐다며 할머니 뒤를 따랐다.



▲ 길 나서는 컨테이너촌 주민의 등은 언제나 펴질까.  

ⓒ2007 강기희



▲ 눈길을 나서는 컨테이너촌 주민. "웬 겨울이 이리도 길까..."  

ⓒ2007 강기희

기약도 없는 컨테이너 생활 "하루빨리 떠났으면..."

마을회관은 컨테이너촌에 있는 여느 집들과 크기나 모양새가 다르지 않았다. 역시 두평 남짓한 컨테이너인 마을회관엔 할머니들이 모여있었다. 날씨 탓인지 회관에 모인 이들은 술잔을 펴놓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안주라는 것이 누군가 만든 메밀부침이 전부였다.

수재민촌에 마을회관이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하니 컨테이너라는 게 서너 사람 끼어 앉으면 그만인 규모라 마을회관을 따로 꾸몄다고 한다. 실제 작은 컨테이너에 이러저러한 살림살이까지 들여놓으면 두 사람 잠자리도 겨우 만들어진다고 하니 마을회관이 없고서는 한자리에 모일 장소가 없을 것 같았다.

마을회관에서도 방문객은 기자라는 이유로 마을사람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곱지않은 시선을 느끼며 지난 겨울을 어떻게 났냐고 물었다. 방문객의 질문에도 할머니들은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우린 방송이나 신문기자들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할머니들 사이에 끼어있던 사내가 말했다. 사내의 나이 사십대 중후반 정도나 되었을까, 사내는 할머니들과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사내는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상 위에 있던 술잔을 비워냈다. 기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기자들이 수재민들의 아픔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앞장서지 않고 지들 입맛에 맞는 기사만 써대거든요. 사실은 그게 아닌데 국민들은 기자의 말을 그대로 믿거든요."

방송이나 신문기자들로 인해 받은 상처가 큰 모양이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오보로 인해 마음이 상처를 입은 탓도 있겠지만 요즘 같아선 방송이나 신문으로부터 잊혀져 가는 것이 화가 난다는 말이기도 했다. 한때 지겹도록 따라 붙던 방송이나 신문들이 어느틈부터인가 발길을 끊었다는 말 속엔 그러한 속내가 숨겨져 있는 듯 했다.

"그 심정 이해합니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에서 눈길을 뚫고 이렇게 찾아 왔잖아요."

"<오마이뉴스> 같은 데서나 여길 찾지 다른 데선 얼씬도 안해요."

그런 대화가 오고가자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문객의 급작스런 출현으로 중단되었던 술마시기가 다시 시작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할머니 한 분이 방문객에 술을 권하고 변변치 않은 안주라며 메밀부침까지 권했다.

"여긴 언제까지 계시게 됩니까?"

"현재로선 기약이 없어요. 작년 여름 이곳에 올 때만 해도 올 6월이면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서는 어림도 없네요. 어찌 해야할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 이유를 자세히 들어보니 작년 수해가 났을 때 진부에 들어서던 부도난 아파트를 주택공사에서 매입해 수재민들에게 임대하기로 했으나 해를 넘긴 지금까지 계약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들리는 소리로는 내년 말이나 되어야 입주가 가능하다니 그 세월이 막막하기만 하단다.

부도난 아파트의 채무를 떠안아야 하는 주택공사측에서 난색을 표하는 이유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미 건교부 승인까지 난 상황이라 기다리면 언젠간 아파트로 들어가겠다 싶지만 그 기약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며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다.

"수해로 집을 잃은 사람들의 아픔보다 주공의 이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주택공사도 따지고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세워진 곳 아닙니까?"

수재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인 이유도 앞으로의 상황을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그 점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란다. 하루빨리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야 하지만 그게 차일피일 미뤄지니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들의 바람이 언제 이루어질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입주를 기다리는 가구수만 해도 237가구나 된다니 그 한숨이 크고도 깊을 수밖에 없다.

"추운 겨울에 화장실 멀지만, 그 정도 견뎌야 수재민"



▲ 집을 잃고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할머니들의 표정이 어둡다.  

ⓒ2007 강기희



▲ 기약없는 컨테이너 생활이 답답하기만 하다.  

ⓒ2007 강기희

수재민들에게 앞으로의 일들은 민감하기만 했다. 정부나 주공의 처사가 밉지만 대놓고 비난할 처지도 되지 못하는 듯 말을 극도로 아꼈다. 자칫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될지도 모른다는 의식이 그들의 말문을 자꾸만 가로막았다.

"화장실이 멀어 헐머니들이 다니시기 불편해 보이던데 괜찮나요?"

"그 정도도 못 견디면 수재민 생활 하지 못합니다. 추운 겨울에 이만큼 지내는 것도 감지덕지입니다. 국민들이 도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도 찾아오는 분들 있나요?"

그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괜한 걸 물었다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다. 민감한 이야기를 그만 끝내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수해가 나기 전에 살던 이야기나 해달라는 부탁에 입을 닫고 있던 할머니들이 하나 둘 입을 떼기 시작했다.

진부면 봉산리에 살다가 수해를 입은 할머니는 60년 가까이 벌꿀 농사를 지었다는데 그 일이 지긋지긋해 이젠 아파트에서 편히 살고 싶다고 말한다. 평생을 벌과 함께 살았지만 이젠 벌통도 벌도 다 도망가고 없는 처지라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단다.

벌꿀 농사를 지었다는 할머니는 평생 세탁기 한 번 써보지 못했다가 이번 수해로 컨테이너 생활을 하면서 난생처음 세탁기의 편리함을 알았다고 했다. 빨래 이야기가 나오자 할머니들이 다들 요즘 세상이 좋아졌다며 옛날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말도 말아요. 얼음을 도꾸(도끼)로 깨고는 그 물에 빨래를 하는데 얼음 쪼가리가 옷에 딸려나와요. 그걸 방망이로 두들겨 깨며 옷을 빠니 세탁이 제대로 되겠어요. 손은 또 얼마나 시렵던지, 눈물이 폭 쏟아져요."

한 할머니의 말에 다들 공감하는지 한마디씩 거들었다.

"손이 시려 빨래를 짜지 못하니 마르긴 얼마나 더딘데. 그게 마르자면 어떨 땐 일주일도 더 걸려."

"맞아, 옛날엔 그랬지. 요즘 사람들 그런 얘길 하면 믿지도 않아."

예전 어머니들의 모습이란 너나 할 것없이 다들 그렇게 살았다. 요즘 여자들은 그런 일 시키면 하루도 못 견디고 도망칠 거라는 한 할머니의 말에 할머니들의 서로 맞장구를 치며 한바탕 웃었다.

처음 마을회관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어색하던 자리가 시간이 흐르자 한 식구처럼 편안해졌다. 밖에는 여전히 눈보라가 치고 있었지만 수재민촌 사람들이 모인 방안은 훈훈하기만 했다.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의 말 "오늘 말 잘들었지요?"



▲ 할머니들의 한숨을 술잔에 담아 마실 수만 있어도.  

ⓒ2007 강기희



▲ 모진 눈보라만이 콘테이너촌을 휩쓰는데, 봄은 무슨 얼어죽을 봄!  

ⓒ2007 강기희

시간은 오후를 넘어서 저녁으로 치닫고 있었다. 작별 인사를 해야 하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위기를 깨는 듯 싶어 남몰래 엉덩이만 들썩거리다가 이러다간 하룻밤을 보내고도 작별하기 어려울 것 같아 결국 늦기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핑계를 달았다.

문을 열자 눈발이 마을회관으로 휭하니 몰려들었다. 신을 찾아 신으려는데 여든이 넘은 할머니께서 한마디 던진다.

"오늘 말 잘들었지요?"

할머니의 말뜻을 모를 리 없어 "예" 하고 큰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할머니가 바라고 원하는 것은 컨테이너 생활을 접고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었다.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곳은 정부나 주택공사밖에는 없으니 현장을 다녀온 기자로선 크게 도울 일도 없다. 그럼에도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대답했으니 미안하기만 하다. 다만 기자가 본 3월 10일은 봄이 아니라 분명 겨울의 한복판이었다는 사실만은 그대로 전하고 싶다.

/강기희 기자